벽이 아닌, 나를 오르는 시간


 

찌는 듯한 더위에 눈동자 하나도 움직이는 게 귀찮아지는 날씨.

이런 날엔 아웃도어에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핑계로 

며칠째 방콕만을 이어가다 둔해진 몸을 본 나는,

나태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타잔101(압구정역 위치)을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귀여운 슬리퍼, 그리고 깜찍한 아깽이에 감탄한 것도 잠시,

곧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사람들의 뒷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클라이밍 경험이 10년이 넘었다는 양명욱 크루, 하지만 그는 여전히 클라이밍에 신선한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여전히 새로운 길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오르는 길이 정형화되지 않은 것이 클라이밍의 매력이 아닐까? 남들과 똑같은 길이라면 늘 질색하는 나는 양명욱 크루의 말에 오히려 클라이밍에 대한 도전 욕구가 불타올랐다.

 

하지만 의욕과는 별개로 클라이밍을 시도해 본적은 없기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체력이 좋지 않아도 괜찮은지에 대해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모든 수업은 수강생의 체력이나 체형에 철저하게 맞추어 진행되기 때문에 운동 감각이 없다고 해도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를 보는 양명욱 크루의 눈빛에 확신이 가득했다. 아까의 도전욕구가 다시 한번 불붙었다. 그래, 망설일 시간이 있다면 클라이밍 슈즈를 신고 직접 경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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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경험하는 클라이밍 슈즈의 기분 좋은 압박감

 

우선 편안한 복장으로 클라이밍 슈즈를 신어 보았다. 벗어서 땅에 놓으면 거의 반은 접힐 것 같은 모습에 사이즈를 잘못 신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압박감까지 느껴졌다. 게다가 발가락 부분은 뾰족하게 모여있다. 작은 구석도 문제 없이 디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용자의 안전을 위한 디자인인 것. 하지만 첫 만남의 낯선 감각만 빼면 클라이밍 슈즈의 압박감은 오히려 내가 클라이밍을 진짜 시작하게 되었구나, 라는 기분 좋은 느낌을 전달해줬다.

 

그다음 전신 스트레칭으로 워밍업을 하고 안전 수칙을 복기했다. 이대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건가,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곧바로 이어진 수업에서는 클라이밍에 대해 내가 얼마나 1차원적인 생각을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클라이밍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클라이밍은 눈앞에 있는 벽을 올라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쓰고, 생각을 해야 한다. 같은 루트를 타더라도 그 날의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똑같은 루트라고 해도 기록이 매일 같지 않으며, 전혀 다른 기록이 나올 수 있는 변화가 가득한 운동이었던 것. 

 

게다가 근육의 사용 또한 중요하다. 내 몸의 근육을 통제하고, 사용하는 것이 능숙해지고, 또 균형 감각까지 생기면 눈 앞에 보이는 이상한 위치의 작은 홀드에서 몇 시간도 쪼그려 앉아서 버틸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코치님은 직접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스텝부터 팔을 둥글게 말아 그 안으로 다리를 넣고 매달리거나, 특정 부위에 무리가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스텝까지, 다양한 포즈로 여러 가지 루트를 타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클라이밍 자체가 클라이머가 원하는 대로 바뀔 수 있다는 직접 확인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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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우리가 함께 벽을 넘는다

 

클라이밍이 전신 운동 + 뇌 운동인 만큼,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다른 수강생들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익숙해지면 혼자 와서 자신만의 연습이나 운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에는 서로의 존재가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모두 전문가가 아닌 탓에 실수를 하는 것이 당연한 만큼, 그 모습을 보고 저렇게 하면 실수하겠구나, 저런 방식으로도 할 수 있네, 라는 것을 알게 될 수 있다. 당연히 초보라서 하게 되는 실수도 줄어들기 마련. 내가 보지 못하는 폼을 상대방이 봐주고 교정해주는 것은 물론, 힘들 땐 서로 격려해주기도 하면서 동료 수강생들과의 팀워크를 쌓아가다 보면 조금씩 능숙해지는 서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클라이밍이라는 운동 자체가 강도는 놓고, 지루하지 않은 데다 효과가 빠르게 보이는 운동이라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많지만, 타잔 101은 그중에서도 여성 수강생의 비율이 7:3을 보일 정도로 높았다. 특히 최근에는 아이들도 수업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신체와 뇌를 함께 자극하고, 길을 찾는 과정에서 창의성 발달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 어린 나이에 시작하면 그만큼 더 효과적이기 때문. 집으로 돌아오면서, 타잔101에 다시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이유를 고민해 보았다. 접근성이 좋은 위치와 깔끔한 분위기가 우선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하나 더 꼽자면, 수업방식이 정말 꼼꼼하다는 점이다. 수업을 비디오로 촬영하기 때문에 수강생들이 영상을 돌려 보면서 자신의 실수를 확인하고, 폼도 스스로 교정할 수 있다. 수강생마다 맞춤으로 알려준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점! 

 

클라이밍 자체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초크를 바르고 벽에 오르는데 집중하면서, 성취감을 느낀 것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까지 해소된 것 같았다. 기분 탓인지 살짝 살이 빠진 것 같은 느낌까지…..어쩐지 다음번 타잔101 수업이 벌써 기대된다.

 

 

 

  • 양 명 욱 Team xCREW
    암벽활동은
    모든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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